화학결합은 원자들이 분자나 이온 또는 결정 등의 안정한 물질로 ‘결합’하게 하는 모든 종류의 상호작용이라 할 수 있다. 원자들이 서로 가까이 접근하면 원자핵과 전자들은 상호작용하여 어느 특정한 구조에서 에너지를 낮출 수 있는데, 이때 결합이 형성된다.
보통 중,고등학교에서 화학결합에 대해 배울 때 이온결합과 공유결합을 구분하여 정의한다. 교과서적인 정의에 의하면, 이온결합은 금속 원소와 비금속 원소 사이의 결합으로, 원자들 사이에서 전자가 이동하여 생성되는 두 이온들 사이의 정전기적 인력으로 형성된다. 공유결합은 비금속 원소들 사이의 결합으로, 원자들이 각각의 전자를 내놓아 형성한 전자쌍을 공유하여 안정해지는 결합이다.
이온결합에서 전자가 한 원자에서 다른 원자로 이동하여 이온을 형성한다는 것은 머리 속에서 어느 정도 그려볼 수 있지만, 공유결합에서 두 원자가 전자쌍을 공유한다는 것은 머리 속에서 쉽게 떠오르는 그림이 아니다. 더욱이 단일결합, 이중결합, 삼중결합은 모두 공유결합이지만, 이들 결합에서 전자쌍의 공유는 어떻게 다른 것인지 상상해 보기 어렵다.
이 글에서는 이온결합과 공유결합에서 전자의 거동은 어떻게 다른 것인지, 또 전자쌍을 공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분자의 ‘전자밀도’를 통하여 알아보려고 한다. 단순히 글로 된 설명보다는 전자밀도의 시각화를 통하여 두 결합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면 훨씬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1. 전자밀도#
분자의 전자밀도 그림을 그리기 전에 먼저 전자밀도란 무엇이고 어떻게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래 ‘전자밀도(electron density)‘라는 개념은 양자역학적 원리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이 글에서는 아주 간략하게만 다루기로 한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전자를 다룰 때 한 가지 먼저 명심해야 할 것은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 원리에 의하여 원자나 분자에서 전자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고 단지 전자를 발견할 확률만 말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양자역학 이론은 삼차원 공간의 어느 한 점에서 전자를 발견할 확률을 구하는 방법을 제공하는데 이것을 전자의 확률밀도(probability density) 또는 전자밀도라 한다. 분자의 전자밀도는 분자 내에 있는 각 점에서 전자를 발견할 확률을 나타내는데, 이 확률은 분자 내의 각 점(위치)마다 서로 같지 않다. 달리 말하면, 전자밀도는 분자 내의 전자들이 어떻게 불균일하게 퍼져있는지를 나타내는데, ‘전자구름(electron cloud)‘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전자밀도를 다룰 때 한 가지 문제는 전자밀도는 그래프로 나타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전자밀도 \rho는 공간 좌표가 (x, y, z)인 어느 한 점에서 전자를 발견할 확률이므로 함수식으로 적어보면 \rho = f(x, y, z)이다. 즉 전자밀도는 서로 수직인 3 개의 축으로 나타낸 3차원 공간에서 함수 \rho의 크기를 표시해야 하므로 4차원 그래프가 된다. 인간은 4차원 공간에서 시각화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으므로 전자밀도의 차원을 낮주어 도표로 그리는 몇 가지 방법이 사용된다.
한 예로서, \(H_2\) 분자의 전자밀도의 도표를 그리는 방법을 알아보자.
먼저 3차원 공간 전체가 아니라, \(H_2\) 분자의 두 원자핵을 포함하는 한 평면에서 전자밀도를 구해보면 두 원자핵 근처에서는 전자밀도는 크고, 원자핵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전자밀도는 작게 나타나다. 이 결과를 도시화하는 한 가지 방법은 그림 1과 같이 등고선도(contour plot)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지도에서 여러 높이를 가진 산을 표시할 때 사용하는 것과 같은 방법이다.

그림 1에서 여러 색으로 나타낸 등고선들은 각각 표시한 전자밀도 값을 가진 점들을 연결하여 얻은 것이다. 같은 색의 선을 따라서는 전자밀도는 같은 값을 가지며 이를 등전자(isoelectronic)라 한다.
등고선도는 두 원자핵을 포함하는 어느 한 평면에서의 전자밀도를 나타낸 것인데, 이번에는 이를 3차원 전체 공간으로 확장해 보자. 예를 들어, 등전자 값이 0.003인 점을 한 평면 내로 제한하지 말고 3차원 공간 전체에서 모두 연결한다고 가정해 보자. \(H_2\) 분자는 실린더형의 대칭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두 원자핵을 포함하는 모든 평면에 대하여 같은 등고선도가 그려질 것이니, 등전자 값이 0.003인 모든 점을 연결하면 그림 2와 같은 그림이 얻어질 것이다. 이와 같은 도표를 isodensity surface plot 또는 줄여서 isosurface plot라 한다. Isosurface를 우리말로는 등가곡면이라 하는 것 같은데, 여기에서는 편하게 등전자 표면이라 부르기로 하자.

비슷하게 등전자 값 0.003 대신 0.081 인 등전자 표면을 그리면 그림 2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등전자 표면이 얻어질 것이다 (그림 1 에서 등전자 값 0.081 인 등고선을 참고).
일반적으로 등전자 값 0.002의 등전자 표면을 그리면 분자의 대체적인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2. 전자밀도를 통해 본 공유결합 vs 이온결합#
이 글에서는 전자밀도를 이용하여 화학결합에 대한 통찰을 얻어보기로 하는데, 먼저 아주 간단한 세 가지 분자, \(H_2, HF, LiH\)의 화학결합을 비교해 보자.
이 분자들의 결합은 겉보기에는 \(H-H, H-F, Li-H\)로 표기할 수 있고, 세 분자에서 H 원자는 같은 환경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자밀도를 통하여 세 분자의 결합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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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등전자값 = 0.002의 등전자표면 비교#
아래의 그림은 세 분자의 전자밀도를 등전자값 0.002의 등전자표면으로 그린 것이다. 이 경우 각 분자에 있는 H 원자 근처 영역의 전자밀도에 집중하여 비교해 보자.
(a) \(H-H\) 분자
(b) \(H-F\) 분자
(c) \(Li-H\) 분자
\(H_2\) 분자의 H 원자 주변의 전자밀도를 기준으로 비교해 보면, HF 분자에서는 H 원자 주변의 등전자표면의 반지름은 약간 감소한 반면에, 반대로 LiH 분자에서는 H 원자 주변의 등전자표면의 반지름은 상당히 증가하였다.
세 분자에서 H 원자 주변의 등전자표면의 반지름의 크기는 H 원자 주변의 전자밀도를 나타낸다고 가정하면, 이 0.002 등전자표면은 HF 분자에서는 H 원자 주변의 전자밀도는 F 원자 쪽으로 이동하였고, LiH 분자에서는 Li 원자 주면의 전자밀도가 H 원자 주변으로 이동한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이로부터 \(H_2\) 분자에서 전자밀도는 대칭적으로 분포하여 두 H 원자는 전하를 띠고 있지 않지만, HF 분자에서 H 원자는 부분적으로 양전하를 띠고 있고, LiH 분자에서 H 원자는 부분적으로 음전하를 띠고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이것은 분명히 H 원자와 결합하고 있는 다른 원자가 얼마나 전자밀도를 끌어 당길 수 있는가 하는 능력, 즉 전기음성도(electronegativity) 차이에 기인한다. 등전자값 0.002의 등전자표면은 결합하고 있는 원자 사이에서 전자밀도의 이동이 있으며, F 원자의 전기음성도가 가장 크고, 그 다음 H 원자, Li 원자의 순인 것을 보여준다.
2-2. 등전자값 = 0.08의 등전자표면 비교#
다음은 같은 세 분자의 등전자값이 0.08인 등전자표면을 그린 것이다. 앞의 0.002 보다 훨씬 더 큰 등전자값을 갖는 표면을 그린 것으로, 이 등전자표면은 훨씬 두 원자핵에 가까이 분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번에는 결합하고 있는 두 원자 사이 영역에서 전자밀도 분포를 비교해 보자.
(a) \(H-H\) 분자
(b) \(H-F\) 분자
(c) \(Li-H\) 분자
세 분자의 0.08 등전자표면을 비교해 보면 두 가지 형태로 나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H_2\) 분자와 HF 분자의 등전자표면이 한 가지이고, LiH 등전자표면이 또 한 가지이다.
\(H_2\) 와 HF 분자의 경우 하나의 등전자표면이 결합하고 있는 두 원자와 두 원자핵 사이의 영역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이처럼 결합하고 있는 두 원자핵 사이의 영역에서 전자밀도가 높다는 것은 비록 전자쌍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지만, 전자가 공유되고 있다는 표시로 간주할 수 있다. 즉, \(H_2\) 와 HF 분자는 공유결합을 하고 있다.
반대로 LiH 분자의 경우에는 0.08 등전자표면은 Li 와 H 원자핵 각각을 포함하는 두 개의 표면으로 나뉜다. 즉, 두 원자핵 사이에는 높은 전자밀도를 가진 영역이 없으며, 전자는 공유되고 있지 않다. 이 결합은 공유결합이라기 보다는 이온결합의 성격이 큰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언급할 만한 점은 0.08의 등전자표면은 공유결합과 이온결합을 구분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3. 전자밀도를 통해 본 단일결합과 다중결합#
공유결합에는 단일결합뿐 아니라 이중결합이나 삼중결합과 같은 다중결합도 존재한다. 보통 분자 구조를 표시할 때 단일결합은 결합하는 두 원자 사이에 직선 하나, 이중결합은 평행한 직선 2개, 삼중 결합은 평행한 직선 3개로 표시한다. 그러나 이중결합이나 삼중결합은 두 원자 사이에 결합이 2개나 3개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전자밀도를 통하여 이중결합이나 삼중결합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에테인, 에틸렌, 아세틸렌 분자의 C-C 결합을 비교하여 알아보자. 이 세 분자는 모두 C-C 결합을 가지고 있으며, 차례로 단일결합, 이중결합, 삼중결합이다.
3-1. 등전자값 = 0.08의 등전자표면 비교#
세 분자는 모두 C-C 결합과 C-H 결합을 가지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등전자값 0.08인 등전자표면은 공유결합과 이온결합을 구분하는 척도가 된다. 결합하고 있는 두 원자핵 사이의 영역에서 등전자표면의 형태를 통하여 전자의 공유를 확인할수 있다.
(a) 에테인(\(H_3C-CH_3\)) 분자
(b) 에틸렌(\(H_2C=CH_2\)) 분자
(c) 아세틸렌(\(HC\equiv CH\)) 분자
위의 세 분자에 대한 등전자표면은 결합하고 있는 두 원자핵 사이를 분리하지 않고, 모든 C-C 결합과 C-H 결합을 포함하는 하나의 등전자표면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세 분자에 있는 C-C 결합과 C-H 결합은 예상했던 것처럼 모두 공유결합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2. 등전자값의 변화에 따른 전자 밀도의 변화#
등전자값 0.08의 등전자표면은 세 분자의 C-C 결합은 공유결합이라는 것을 보여주지만, 단일결합과 이중결합이나 삼중결합과 같은 다중결합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기 어렵다.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이번에는 등전자값을 0.2, 0.3, 0.4, 0.6 으로 크게 늘려가며 등전자표면을 그렸다. (등전자표면을 모두 3D 모델로 그리기에는 너무 오려 걸려서 2차원 그래프로 나타내었다.)

등전자값 0.2의 표면은 앞에서 본 0.08 등전자표면과 거의 유사하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에테인의 경우 C-C 결합의 가운데 부분의 전자 밀도가 에틸렌이난 아세챁ㄹ렌에 ㅂ하여 훨씬 홀쪽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0.3 등전자표면부터는 뚜렷한 변화를 볼 수 있다. 에테인의 경우 등전자표면이 C-C 결합 전체를 포함하지 못하고 두 개의 분리된 표면으로 나타나지만, 에틸렌과 아세틸렌의 경우에는 등전자표면은 여전히 C-C 결합 전체를 하나로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에테인의 경우 C-C 결합의 가운데 영역에서 전자밀도는 0.3 보다 작지만, 에틸렌과 아세틸렌의 경우에는 C-C 결합의 가운데 영역에서 전자밀도가 0.3 보다 더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또한 세 분자 모두 공통으로 C-H 결합 부분을 살펴보면 등전잪면이 모두 두 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정리하면 단일결합(C-C 또는 C-H 단일결합)의 경우에는 결합하고 있는 두 원자핵과 원자핵 사이에서 전자밀도가 ~0.3 보다 더 큰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등전자값 04.의 등전자표면을 보면 이번에는 에틸렌의 C-C 결합 사이의 영역에서 등전자표면이 두 개로 분리된 것을 볼 수 있다. 반면에 아세틸렌의 경우에는 0.4 등전자 표면에서는 여전히 C-C 결합 전체를 하나로 포함하고 있지만, 마침내 등전자값 0.6의 표면에서는 이 표면이 둘로 분리된 것을 볼 수 있다.
이상 살펴본 바를 가지고 정리하면 단일결합, 이중결합, 삼중결합은 결합하고 있는 ‘두 원자핵 사이의 영역에서 전자밀도가 얼마나 크게 쌓여있는 가’의 차이이다. 즉, 이중결합, 삼중결합은 결합이 두 개 또는 세 개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전자밀도가 단일결합에 비하여 결합 사이의 영역에서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결합 사이의 영역에서 전자밀도가 더 높은 것은 더 강한 결합을 형성하게 되게 원인이 된다.


